제75주년 유엔군 초전기념 및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
[문화복지신문= 발행인 컬럼]지난 3일 오전 오산시 죽미령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5주년 유엔군 초전기념 및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추모 비행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영토를 지켜주고 믿음의 최고의 수호자인 블랙 이글스는 그어느때와 다르게 오산 창공을 바쁘게 움직인 사연이 뒤늦게 알려진 진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합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단 40km 남짓한 거리에서 숨가쁘게 갈렸던 그시간. 그리고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이 나라는, 아마도 공산화된 채, 우리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1950년 여름,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때 먼저 도착한 540명의 미군, 그 뒤를 잇는 국군 장병들,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오산에서 시작해 진동리, 그리고 서북산까지, 끝없는 후퇴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던 그 시간. 지금,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려 합니다.”
스미스 부대의 첫 전투, 오산 1950년 7월 5일. 경기도 오산 북쪽, 진위천 일대. UN군 최초의 지상 전투는 ‘스미스 부대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전투현장에는 북괴군을 전멸시킬만한 장비는 부족했고, 탄약도 넉넉지 않았습니다.
전차 앞에 선 보병. 540명의 병력은 T-34 전차와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 앞에 하나둘씩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벌기 위한 전투 덕분에 후속 유엔군과 국군 병력이 남하할 수 있었고, 남한 전체가 단숨에 함락되는 일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남하하는 전선에 국군과 후속 유엔군은 마산 진동리 진동 초등학교 교정으로 1진과 2진이 차례로 도착하여 전투력 강화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여유시간은 얼마 없었습니다.
북한군은 빠르게 계속 남하했고, 경상남도 마산 마지막 방어선 진동리 지금의 진동초등학교 일대에 국군 장병들이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위장한 북한 게릴라 군 이었고 그중 일부는 민간인으로 가장한 채 접근한 것을, 눈치 챈 우리 국군이 이들의 정체를 밝혀내면서 발각된 북괴 특수부대 팀들과 현장에서 순식간에 처참한 전투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전투는 계속되었고 게릴라군은 전세가 기우려지자 곧바로 함안 서북산 방향으로 도주하였으며, 그곳에 안착하면서 밤으로만 고슴도치 전략을세워가며 우리군과 유엔군을 향해 고지탈환전으로 일관했습니다.
서북산 탈환전은 무려 19회의 밤낮으로 전투가 진행되면서 우리군과 유엔군 병사들이 많이 희생되었으며 그다지 높지 않은 서북산이었지만 지형적으로 마산을 방어하는 마지막 고지가 되었기에 조금도 긴장을 놓을수가 없는 전투 였습니다.
북한군 게릴라는 여기서도 최후의 방어 거점을 구축하고 무려 19여 차례에 걸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탈환과 재탈환을 하는등 전투는 반복 되었습니다.
이 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는 단순한 고지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으로 향하는 통로가 가까웠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마지막 숨통이 걸린 전투였던 것입니다.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은 우리국군과 각종 지원 병력과 화력을 총동원해 마침내 서북산을 탈환하여. 그날, 북괴군들은 지리산 피아골로 후퇴하면서 산언저리에 거주하는 양민들을 인질로삼고 지리산에서 장기전의 게릴라전으로 일관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주한 북한군 잔당들은 지리산은 워낙 높고 숲이 우거져있는 바람에 피아골, 천왕봉, 심심산골로 흩어져 게릴라전으로 장기전 전환을 시도하였습니다.
군과 경찰, 민간인 치안대가 동원되어 이후 몇 년에 걸쳐 토벌 작전이 이어졌고, 피아골은 오랫동안 게릴라의 본거지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북산은 마지막 방어전의 성공으로 인해 부산은 지켜졌고,전선을 재정비한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반격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스미스 전부대원들의 전몰되면서 까지 오산진지를 사수하면서 까지 지켜내려는 투혼 정신은 우리역사에 영원히 남아 이날 행사에 이르게 되었으며 만약 그들이 실패했다면? 순식간에 내려와 정착하면서 태연하게 우리국군으로 위장하고 또 농민으로 위장했던 상상을 초월할수밖에 없었다는 당시 학도병으로 참여 했던 현장 목격자 증인의 배대균 박사와 손담 (현 예비역 해병 사무총장)씨의 증언을 듣고 매년 문화복지신문과 문화복지방송은 6회에 걸쳐 현장다큐 방송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동리 마지막 방어선” 부산을 불과 40여 km. 남겨놓고 서북산이 무너졌다면 마산은 바로 함락됐을 것이며, 곧이어 진해, 부산까지 밀렸을 겁니다. 그 말은,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는 뜻풀이가 됩니다.
상상 그자체가 불순하지만 그들이 지킨 나라, 우리가 기억할 그 이름, 스미스 부대. 장병은 우리의 영웅이었습니다. 마지막 방어선을 지킬수 있게 해준 스미스부대 전몰 장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기억하고 그정신을 대대로 이어가야 할것입니다.
잊을수 없는 그흔적 , 진동초등학교, 서북산. 우리는 누군가가 피로 지켜낸 이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전쟁을 모르고 살아가는 지금, 그들에게 빚진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75주년 유엔군 참전 기념일을 맞아, 우리는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지킨 나라 우리도 지키겠습니다.”
고히 잠드소서….
문화복지신문 취재팀